• <2022년 한미 동료상담 국제컨퍼런스 자립생활과 동료상담의 본향, 미국의 현 주소를 묻다>
  •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밀양 장애인평생학교 학생분들의 멋진 공연 잘 보았습니다.
  • 이후에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댄스 공연도 있으니까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다음은 내빈 소개, 한국자립생활센터 최용기 회장님 자리해 주셨습니다. 한국뇌병변인권센터 이병변 회장님.
  • 시간 관계상 한 분 한 분 호명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고 많은 분들께서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음으로는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황수아 님 인사말씀 있겠습니다.
  • -반갑습니다.
  • 저희 경남협의회 나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 그동안 역경도 있었고.
  •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었습니다.
  • 그런데 다 잘 이루어지더라고요.
  • 그것은 전 지부센터 소장님들, 국장님들, 활동가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꿈들을 이루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또 더 큰 일들을 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원하는 것이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회에서 함께 잘 살자는 것입니다.
  • 오늘 서울에서도 오셨고 지방에서도 많이 오셨고 오늘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 국제 컨퍼런스가 두 번째인데 오늘 끝까지 잘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박수)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상우 회장님의 인사말씀 들어 봤습니다. 다음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용기 회장님의 인사말씀 듣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 (박수)
  • -최용기: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이번에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자립의 15주년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뜻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22년 한미 동료상담 국제컨퍼런스 이 자리에 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나라의 자립생활과 동료상담이 들어온 지 20년쯤 넘었습니다.
  • 그동안 우리는 우리나라에만 동료상담을 정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했었고요.
  •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시작한 동료상담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바람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20년이 넘는 동안 미국에서 시작했던 동료상담이 지금은 어떠한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 동료상담을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 아주 중요한 국제컨퍼런스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협의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오늘 국제컨퍼런스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박수)
  • -사회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님의 축사 감사드립니다.
  • 다음은 한국뇌병변장애인협회 이용걸 회장님 인사말씀 들어보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오랜만에 많이 모인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 한국뇌병변장애인협회 이용걸입니다.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15년 동안 이 경남 지역에서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사실상 운동의 최전선에서 노력을 해오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저희 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경남지부가 없어요. 왜 없냐고 물어봤더니 능력이 있는 인물들이 다 경남 지역에는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 농담 반 진담 반인 거니까 경남협의회 앞으로 많은 투쟁에 있어서 언제나 앞장서가는 조직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15주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 (박수)
  • -사회자: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이용걸 회장님 감사드립니다. 멀리서나마 축하영상을 보내오신 분들이 있어서 축하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권달주입니다.
  • 먼저 사단법인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창립 15주년을 맞이하여 한미 동료상담 국제컨퍼런스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오늘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노력하신 회장님, 사무처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 요즘 전장연의 핫이슈인 지하철, 그동안 무수한 언론과 정치 관료 사회가 무관심으로 이관했던 21년의 세월보다 한 정치권의 잘못된 행태로 장애인과 시민을 갈라치기하고 문명, 비문명 사회로 나누고 혐오, 갈등을 조장하는 언어들로 더 다급해지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적 사회를 위한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함께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 한미 동료상담 국제컨퍼런스의 미국 장애인법 개정 이후 투쟁자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지금 우리에게는도 관심 많은 탈시설에 대해서 미국 탈시설 추진 정책 현황들을 들어보면서 한국의 탈시설 정책 방향을 모색해보고 우리의 자립생활운동을 향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 다양한 방향에서 토론해 보는 시간이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끝으로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창립 1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
  • -박경석: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 맞죠? 축하합니다.
  • 그리고 한미 컨퍼런스 두 번째인가요? 축하합니다.
  • 15주년의 의미가 이제 경남을 넘어서 국제로 가라는 듯이, 경남의 노력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같이 힘으로 뭉쳐졌으면 좋겠습니다.
  • 바로 경남에서부터 전국을 제패하는 길을 밝혀 주실 거죠, 동지들? 투쟁! 투쟁입니다.
  • 그래서 축하의 힘이 모두에게 골고루 퍼질 수 있으면 좋겠고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고 이 고생이 우리의 엄청난 단결과 희망으로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투쟁!
  • -윤종술: 안녕하세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입니다.
  • 우선 한미 IL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해 주신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IL 운동이 시작된 한국 사회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지역에서 탈시설 운동부터 시작해서 자립생활, 장애인 당사자 그룹의 IL이 이렇게 활성화되고 있는 데에 대해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그리고 국제컨퍼런스를 경남 지역에서 갖게 됨을 축하드리고요. 미국의 셀라이프 창립자이면서 설립자인 엘리베스 님을 모시고, 특히 박성호 소장님, 이영숙 소장님, 김진호 소장님의 토론을 통해서 한국의 자립생활 운동 현실, 한국의 탈시설 현실, 또 탈시설의 미래, 미국의 탈시설에 대한 내용들, 미국의 자립생활 내용, 탈시설과 자립생활들을 연계해서 가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경남에서 국제컨퍼런스를 열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요.
  • 미국의 선진사례들을 한국이 가져와서 한국 사회에서 맞게 한국의 탈시설을 또 자립생활을 이렇게 소개해 주시고 선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사람으로서 겅남 IL센터가 주최하는 이렇게 한미 IL 컨퍼런스 성대하게 열림을 축하드리고 함께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통해서 그 지역사회의 탈시설 운동, 자립생활 운동을 같이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많은 부분의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고 있고 대상자이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축하드리고 같이 활동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회자: 축하영상 잘 보았습니다.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 다음은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 활동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 축하합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 축하합니다.
  • -경남장애인협의회 15주년 축하드려요~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까지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1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 축하드립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경남협의회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축하합니다.
  • -사회자: 짧은 영상이었지만 경남협의회 15주년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경남협의회 활동들이 지금의 경남의 장애인 정책이 도입될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지금 시간은 12시 58분인데 오후 1시부터는 2부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2부는 2022년 한미 동료상담 국제컨퍼런스 자립생활과 동료상담의 고향, 미국의 현 주소를 본다인데 동료상담 위원회, 박현국 위원장님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 1부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혜연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한밤 중이라서 늦게까지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이 자리하고 계시는데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앞서 말씀을 드리면 경남협의회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작년에는 일본의 동료상담 아사카 니오 님을 모시고 동료상담에 대해서 자립생활 운동에 대해서 진행한 적이 있었고 올해는 LA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릴리베스 나바로 님을 모시고 동료상담과 미국의 자립생활운동에 대한 역사 등을 말씀드리고자,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된 게 어느 정도 안착되어야 할지.
  • 또 최근에 이동권이 많이 이슈되고 있는데 미국의 이동권에 대해서 좀 나오셔서 강연을 하시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고요. 오늘 이 자리에 그래서 나와 계십니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강연을 하시니까 도움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고 유튜브에다가도 질문을 올려주십시오. 그래서 그걸 캡처해서 제가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께 대신 질문을 드릴 테니 유튜브로 질문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러면 지금부터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 모시고 초청 강연 들을 텐데, 나와 계시죠?
  • -잘 들리나요?
  •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 지금 동시통역이 안 되고 있는데 잠깐 확인을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릴리베스 나바로: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 청각장애인분들도 포함돼 있고 여러 다양한 그룹으로 포함돼 있는 것이 장애인입니다.
  • 2000년에는 이러한 그룹이 다 분리돼 있었고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그룹들이 모두 모여서 가치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동료상담이 이를 통해서 진행된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그룹이 다른 그룹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동료상담을 통해서요.
  • 우리는 차별일지라는 것을 만들어서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 그래서 입법기관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국회인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우리의 어려움들을 일지로 적어두고 휠체어 타시는 분들이 어디에 갈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없는 것, 청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없는, 이런 이야기들을 담아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우리는 이러한 편지를 국회에 보냈습니다.
  • 그래서 우리에게 권리를 달라, 미국인들에게 권리를 달라, 미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 1990년 7월이었습니다. 그때 장애인법이 우리의 노력을 바탕으로 해서 제정이 된 것입니다. ADA라고 하고요, 미국의 장애인법이 제정되었습니다.
  • 그전에는 시민권 분야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유색인종을 보호하고 그리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장애계에 대한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장애인들이 직접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 그래서 이 장애인법을 제정함으로써 장애인들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동료상담이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시각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휠체어를 타는 이들에게 전달했고 우리는 서로 공유했습니다. 같이 시위했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축하합니다.
  • 그래서 장애인법이 통과된 이후 이것은 시작점일 뿐이었습니다.
  • 사람들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만나고 서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퇴행해야 안 되고 계속 전진을 해야 합니다.
  • 그래서 장애인들은 항상 시설에서 살았었습니다. 정부에서 그것을 기금을 냈었죠. 그리고 장애인들을 시설에서 보호했지만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 시설에서 계속 살아야 했었습니다.
  • 젊은 사람도 있었고 또 어른이 되고 싶었고 밖에 나가고 싶었고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 그렇지만 벽이 있었거든요. 만약에 정부가 장애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그 시설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 그래서 이전에 두 분이 있었는데 조르지아 외 두 분의 장애인이 계셨는데 이분들의 노력으로 암스테르 대법원 판결이 이끌어졌습니다. 그분들이 말씀하셨던 것은 장애가 있지만 우리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 그 당시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안 된다"라고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장애인들이 밖에서 사는 것을 허락할 수 없고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분들은 "아니다, 우리는 밖에서 살 수 있다, 우리를 간호하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그 기금을 가져와서 우리가 우리 아파트에서, 우리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우리가 마트 갈 수 있게, 영화를 보러갈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그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 그것이 암스테드 대법원 판결로 나왔습니다. 이 판결을 통해서 이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전환기 탈시설 프로그램입니다.
  • 그러면 탈시설 프로그램이 뭘까요? 이것이 바로 ADA의 결과입니다. 그 의미는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이제는 밖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 또한 바깥 지역에서 살면서, 그리고 시설에서 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설을 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분명하게 의사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잠깐이라도 여러분께서 질문이 있다면 멈출 수 있습니다.
  • ADA라는 것은, 미국 장애인법은 동료상담, 동료 그룹, 그리고 이들의 법적인 노력, 그리고 암스테드 대법원 판결, 탈시설 프로그램 이런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고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센터에서 탈시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 시설에서 나와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꼭 시설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려주고 그리고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ADA는 어떤 것일까요? 미국 장애인법으로 인해서 장애인들은 지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권리를 보장받게 된 것입니다.
  • 여성, 그리고 민간기업 이런 부분에서 장애인들이 일하려고 할 때는 편의시설을 제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꿨습니다. 내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내가 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 나는 장애가 있지만 내가 계단을 못 올라갈지라도 경사로가 없어서 계단을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경사로를 그래서 놓게끔 법적화 하면 되고, 그리고 내가 볼 수 없지만 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깔아줘야 하고.
  • 그래서 내가 컴퓨터에서 원하는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 소프트웨어가 올라가야 한다, 설치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합리적인 편의시설이라는 것입니다.
  • 당신이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컴퓨터를 사용해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들이 컴퓨터를 듣고 보고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술적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당신이 청각장애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여러분들도 보신 적이 있겠지만, 여러 가지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 보청기도 있고요. 자막도 있습니다. 캡션도 있고요.
  • 우리 어머니도 지금 청각을 듣기 어려워하세요. 한 70% 청각 소실이 되어서 잘 안 들린다고 하시지만 영화를 볼 수는 있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화에는 자막이 있으니까. 그리고 어머니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통신적인 편의시설로 인해서입니다.
  • 미국에서는 재활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모든 미국의 시스템에 대한, 장애인들을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 있는데.
  • 저희 센터 같은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그리고 다른 경우에는 사무실에서 근무를 합니다. 접근 가능성이 높아지고 버스, 열차, 택시라든지 혹은 또 미니버스라든지 마이크로 버스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그래서 교통들은 핵심입니다. 요청하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것에 대해서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인데, ADA 법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또 다른 내용은 여러분이 만약에 중증장애인이라고 할 경우에 여러분들은 일을 하는 경우에 다른 활동 보조인을 통해서 일하는 데 보조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여러분이 만약에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을 경우에 활동지원인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이 일을 할 때, 특히 활동보조인을 통해서 일자리에서도 일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활동보조인, 근로지원인 그런 표현이 되겠죠.
  • 그리고 또한 이제 더 이상 여러분들이 일을 하지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저한테 일을 주세요,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스마트해야 하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일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추야 합니다.
  • 여러분들이 장애인이라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직장에서는 장애인에게 일을 제공할 의무는 있지만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장애와 상관없이 분명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건물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을 때 그 건물에 램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 그러면 만약에 제가 이런 램프가 없는 경우에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런 정당한 편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에 그렇지 않을 경우에 여러분들이 컴퓨터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 그래서 장애인들에게 동료상담을 할 때 우리가 이러한 것을 명확하게 잡아갑니다. 반드시 일에 대한 원칙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어떤 것들을 버리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예,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일할 수 있는 권리란 이런 것이죠.
  • 제가 한 달 전에 다른 어떤 혜택을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여러분이 일을 하게 되면 여러분이 혜택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의료, 직장에 있는 사람들 일을 하게 되면 장애인이 아니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들 때문에 싸우고 있어요.
  • 제가 일을 한다고 해서 제가 장애인이 아니라는 건 아니라는 것이죠. 제가 일을 하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그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장애인이고.
  • 그렇게 되면 어떤 장애를 포괄적으로 보게 되면서 장애라는 카드를 갖게 되고 아니면 다양한 탈시설을 보게 되고 다른 곳에서도 참여할 수 있게 되고 그렇지만 비장애인들은 보지 않는 혜택을 볼 수는 있을 텐데 비장애인들은 장애로 인해서 부차적인 비용을 고민하지는 않지만 저희는 그런 비용을 고려하거든요. 어떻게 보는 장애로 인한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이해가 없지 않을까.
  • 그래서 미국이 한국한테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저희도 그런 내용을 말씀드릴 수 있고 혜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고요.
  • 그러면 이건 어떤 장애운동에 대한 감수성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전에 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떤 소득을 만들어내는 남편 부부가,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이 되거든요.
  •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어떤 이런 혜택 이런 것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장애인에게는 모욕적인 상황이 되고 미국에서의 운동은 이런 것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권리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정당한 편의시설에 대한 권리, 그리고 건축, 건물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 지금 많은 사람들, 많은 장애인들이 밖에 나가서 데이트도 하고 하지만 지금 이런 팬데믹 때문에 레스토랑이라든지 이런 쪽에 약간 제한이 되기는 했었지만 하지만 여전히 이런 장애인들에 주는 사회 제한이 있다는 것이죠.
  • 그리고 우리가 또 장애인으로서 어떤 전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말씀드렸지만 전략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 단순히 여러분의 장애를 갖고 있는 같은 사람들로만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향의 장애인들과 접촉하는 것,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다른 장애 유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예를 들면 저는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청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는 염려는 없습니다. 그런 수준에 가게 되면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청력을 보완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미국에서는 청각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벡 대학교라는 곳이 있습니다. 최초의 청각장애인 교육 기반이었는데 이 대학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청각장애인들에게 학술적인 도움, 교육 방식 등을 계속해서 연구, 노력했던 대학입니다.
  • 만약에 여러분들께서 미국에서, 아마 2월이었나요. 오스카 대상을 받은 작품 중에 영화 '코다'라는 작품인데 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가족 구성원이 다 청각장애인이었고 그녀 혼자만 청각이 살아 있는 그러한 여성이었고 가족 전체에게 통역을 해 주는 그런 영화였는데 아름다운 영화였고 기회 되시면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서 가족들은 서로서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됐고 딸이 가족 구성원이 그렇게 살아가게 됐는데 아버지 역할했던 부분은 남우 주연상을 받으셨어요. 제가 봤을 때 굉장히 좋아했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 이런 식으로 미국에 대한 영화를 말씀드렸었고요.
  • 그러면 또 계속해서 미국에 대해서 보게 되면 지금 어떤 그런 소송에 대한 그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 예를 들면 LA 같은 경우에 저희가 3번 정도 소송을 했었고 3번 다 승소를 거두었습니다.
  • 저희가 예를 들면 도로 접근에 대한 승소를 얻게 됐고 휠체어를 탈 때 길을 건널 때 경사로를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 경사로가 수리 중이거나 아예 보도블록에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 그러면 장애인들이 이 도로에서 다른 곳으로 우회해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게 됩니다.
  • 그래서 시설물에 대해서 이 때문에 소송을 했습니다.
  • 그래서 3만 마일 정도의 보도블록을 시 정부에서 보수하고, 10년 동안, 또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냈습니다.
  • 컬라이프가 함께했고 지역사회와 함께했고 이것은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죠. 우리가 모여서 동료상담을 통해서 서로를 격려하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불만이 많죠. 불만이 많은데 특히 이사회 같은 경우에는 이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결정하죠. 어떤 게 중요한지를,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회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하는데 그래서 장애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 우리가 그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장소에 가 있어라, 참여해라, 회의가 있다면 그 자리에 가라"라고 합니다. "그곳에 가서 말을 하라" 그럼으로써 이사회의 회원이 되는 기회를 잡아라. 그리고 그럼으로써 다른 것을 더 얻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께서 이사회에 다가가게 된다면 더 많은 파워를 갖게 됩니다.
  • 또 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게 됐는데 왜냐하면 시 정부에서는 장애인들에 대해서 긴급대책계획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요. 이런 부분은 자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 정부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대책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요.
  • 이 사람들을 대피하게 하고 안전하게 그 상황을 대응하게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재가 났을 때거나 아니면 재난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장애인을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ADA 법을 보면 반드시 그 과정에 장애인을 포함시켜야 하지만 시 정부는 포함시키지 않아서 우리는 소송을 냈고 우리가 승소를 했습니다.
  • 이제는 우리가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입니다.
  • 우리 장애인 그룹들이 모여서 일을 강행하고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마지막으로 우리가 했던 소송은 LAC 공공주택부서, 왜냐하면 LA 시 정부에서는 굉장히 주 정부, 연방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서 공공 가능한 주택들을 건립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수의 아파트를 설립해야 합니다. 휠체어도 접근 가능한 아파트, 청각장애인이 갈 수 있는 아파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 즉 빛이 있어야 하고 그 기술이 부여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 다른 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그런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이제 DA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탈시설입니다. 이것도 현재 탈시설 프로그램입니다.
  • 여러분께서 지역사회에서, 시설 밖에서 살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것에 대한 필요한 자원이 있고 여러분이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
  • 또 자립생활센터 현황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요. 자립생활센터는
  • 여러 가지 역할을 지역사회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싱크탱크 역할을. 지역에서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물어볼 때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싱크탱크 역할을 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이 지식을 알려주고요.
  • 또한, 리더십 아카데미의 역할도 합니다. 장애인들이 어떠한 스킬을 배울 수 있도록 합니다.
  • 정부에 어떤 민원을 제기할 때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알려주고요. 또 도서관, 역사박물관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 장애인박물관이죠. 어떤 사진들, 장애운동의 사진들, 역사 이런 것들을 우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 또 권리의무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그리고 문화와 관련해서는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립생활센터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요.
  • 그리고 또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포괄적이고 굉장히 좋은, 훌륭한 권리옹호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에게 연락을 해 주셔서 LA 오렌지타운 주민들이 많은 활동을 해 주고 계십니다. 이런 것들이 커뮤니티의 반영, 그리고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그리고 펀딩, 기금은 연방 정부에서 받습니다. 그것이 또 주 정부로 가고 시 정부로, 자립생활센터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 캘리포니아에서는 우리가 성공적으로 기금을 받게 되면 우리가 이것을 주 정부, 연방 정부로부터 받아서 사용하게 됩니다.
  • 우리 자립생활센터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기관입니다. 우리는 이사회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직원들도 있고 펀딩을, 기금을 받기는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관여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사용합니다.
  • 물론 매년 감사를 받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어떤 예산 사용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감시를 받게 됩니다.
  •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요. 장애인들은 여러 가지 운동들과 연계돼 왔습니다. 여성운동, 시민운동, 노인운동 등과 연계돼 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장애운동을 하고 있죠.
  • 그래서 우리가 바른 운동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항상 우리가 같은 가치에 대해서 지원해야 합니다. 여성운동에 대해서 모든 것들을 우리가 지원할 필요는 없죠.
  • 낙태 찬성과 같은 문제입니다. 낙태 찬성이 뭘까,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죠. 캘리포니아, 미국에서는 굉장히 슬프게도 낙태를 찬성합니다.
  • 왜냐하면 그 아이가 장애인이라면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합법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저는 이번에 바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지금 수십 년 동안 낙태가 인정이 돼 왔습니다. 지금까지 3,300만여 명의 아이들이 낙태돼 왔는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것은 볼 수가 없고 걸을 수도 없고 다닐 수도 없는 아이들이 말이죠.
  • 그러면 이런 동료상담가의 자격에 대해서도 물어보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특별 요건을 제가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석사가 있어야 한다거나 꼭 대학을 나와야 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께서 장애에 대한 경험이 있게 된다면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당사자거나 아니면 장애를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장애에 대한 싸움, 투쟁을 알고 있다거나 이런 경우에.
  • 그리고 혹은 또 이런 장애 역사에 대해서 좀 알고 계시거나 아니면 현재 상황을 좀 알고 계시거나 그리고 진정한 어떤 장애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마 자격이 되 겁니다.
  • 될 겁니다. 그리고 장애에 대해서 기꺼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그리고 장애인의 이익에 대해 대변을 할 때, 다양한 네트워크 서비스에 대한 지식이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분명히 피할 텐데, 여러분들이 그러면 또 그 속에서 방향을 알게 될 겁니다. 예를 들면 자원이라든지 장애와 관련된 GPS가 될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올바르게 알려주는 그런 것이 동료상담가이고 그것도 하나의 요구 사항이 될 것입니다.
  • 또 보조기술을 잘 알고 있다면 하나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장애인법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그런 흐름을 알고 있다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ADA법은 항공사와는 아직 커버를 못 하고 있습니다. 항공기법은 다른 법에서 다루고 있어요. ADA법은 공항까지는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 그래서 공항에서 항공기에 탑승하기 전까지는 ADA법의 적용을 받지만 항공기 안에서는 항공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 그런데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희 이사 중의 한 분께서 그들의 휠체어를 잘 타보지 않았고 휠체어를 굉장히 잘못 조정하셔서 이분이 어떤 사고를 당해서 급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싸움이에요.
  • 우리는 지금 항공사, 항공기 관련된 법을 지금 또 약간 개정을 해서 항공기 안에도 접근성을 높이는 그런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일단 휠체어를 다루는 어떤 공항에 있는 직원들이 휠체어 사용자들을 존중할 수 있도록 말이죠. 휠체어는 저희의 다리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침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굉장히 사례들이 많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우리는 또 만나봤었는데요. 권익보호작업. 우리가 계속해서 장애인권에 대해서 저희는 이야기를 해왔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는 장애에 대한 교통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었고요.
  • 그래서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이 필요할 때 적절한 교통이 필요할 때 이야기를 해왔고 그리고 장애인들이 교통 이용에 대해서 존중을 받지 못할 때 개선하려고 노력을 해 왔고요.
  • 그래서 지금부터 드리고 싶은 말씀은 최근에 제가 좀 들었던 내용은 샌디에이고 시에서 장애인을 고용을 해서 열차 즉, 기차역에 그다음에 버스정류장에 엘리베이터 시설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는데 안전을 위해서죠.
  • 그리고 고객의 열차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그런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샌디에이고 시에는 장애인을 직접 고용해서 그런 시설들을 모니터링 하겠다는 그런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 굉장히 좋은 뉴스죠.
  • 또한 장애인들에게 어떤 자립생활 기술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설에서 한 50년 동안 살아왔던 장애인들이 만약에 아파트를 얻었을 경우에는 그것을 어떻게 사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기술들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죠.
  • 사는 법, 은행 계좌 개설 방법, 개인 예산 관리 방법, 바깥 세상에서 사는 방법 등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 우리가 아예 이런 것을 자립생활이라고 부르죠. 또한 정부기관과 기관과 연계를 하는데 방금 말씀드렸던 GPS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되고 동료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희가 또 들었던 내용이 제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 원래 처음에는 태어날 때 장애가 없었습니다. 7남매 중에서 태어날 때 장애가 없었고요.
  • 그런데 제가 장애를 가지면서 걸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할머니 등 조부모님 등이 돌봐주셔서 좋은 학생이 됐고요. 그런데 장애인으로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장애인을 볼 수가 없었고 그렇지만 운이 좋아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 3년 정도 일을 했고 상사를 잘 만나서 글도 쓸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미국에 또 올 수가 있게 되었고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제가 굉장히 운 좋게도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장애 운동을 하는 분들을, 저 같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죠.
  • 장애인들에게 굉장히 좋은 동료상담가이고 그 안에서 많은 시스템을 볼 수 있었습니다. ADA를 통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환경, 건축물이 바뀌어가는 모습들을 또한 제가 볼 수가 있었습니다.
  • 이런 것 등 역사가 변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죠. 또 우리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 그래서 이런 노력들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장애인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었고요. 그리고 저는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많은 뛰어난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면서, 그리고 접근성에 대해서, 그리고 장애인들의 의미 있는 통합적 참여를 꾀하는 그런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이 접근성과 관련된, 제가 첫 번째로 들었던 내용들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 성경에 보시면 되면 누가복음 3장 7절에 그 내용이 있는데 '예언자, 메시아'에 대한 말씀, 광야에서 외치는 말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여 보게 만들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게 될 것이고 모든 산과 골짜기는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뚫어진 곳은 평탄하게, 험한 곳은 평탄하게 될 것이니 모든 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 이것은 접근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성경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 이런 구절에서 장애인의 존엄성, 사명, 장애인의 어떤 경험과 관련된 전반적인 목적을 제가 알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 장애인의 삶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인종, 문화, 그리고 모든 이들 간에 능력에 의해서 공유되는 인간의 경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매일매일 이런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저는 또 장애인으로서 또 어떤 내용을, 어떤 저의 내용들 경험들을 스스로 체득하고 경험했던 것을 변형시킨 것인데 이러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인데 초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촛불의 중간을 보시게 되면 검은색의 촛심이 있습니다. 촛심이 고통을 태우면서 빛을 내잖아요. 우리도 고통이 있지만 희망을 가져야 하고 이 희망 안에서 계속해서 또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약 1시간 정도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이 강연을 했습니다. 자립생활과 동료상담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이야기를 하시다 보니까 흐름을 따라 가기가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제도에 대해서 이후에는 고민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제가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께 여쭤볼 몇 가지 사전 질문으로 좀 드려 봤었는데요.
  •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됐고 그리고 각종 탈시설 관련해서 운동을 하고 있고 그에 대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ADA법이 제정되고 나서 장애인 관련법 제정된 것이 있는지 여쭤봤고요.
  • 또 지역 카운슬링, 각 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게 있는지 그룹 카운슬링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하셨고.
  • 그리고 집단 동료상담, 개별 동료상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는 동료상담의 목적.
  • 제가 알기로는 미국에서의 동료상담이 이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는데 동료상담의 목적 중에 인간관계 재구축, 사회 변화 등을 이야기하는데 미국에서의 동료상담 목적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질문이 있는지 두 가지 질문을 좀 드릴게요.
  • 정리를 하면 법제적 운동을 갖다가, 장애인 관련한 법제적 미국 사회가 ADA 법 이후로 하고 있는 게 있는지, 진행되고 있는 게 있는지, 미국에서는 동료상담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이 두 가지만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릴리베스 나바로: 우리가 법 개선과 관련해서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동료상담 같은 경우는 우리의 권리옹호를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 ADA가 제정이 된 이후에는 굉장히 많은 극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 탈시설 운동 등이 있었고요. 제가 그 운동에서 함께했었습니다. 국회 첫 번째 시위에도 제가 참여를 했었고 조르지오에서도 참여를 했었고요. 그 시위는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진행됐습니다.
  • 요양원에는 기금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장애인들의 간호를 위해서 예산이 그곳에서 사용되고 있었지만 시설이 예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시설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거죠, 장애인들을.
  • 그래서 그 시설에서 밖으로 나오면 혹여 샤워를 하거나 무엇을 하거나, 아침을 먹거나 시설 안에서 어떤 것이든 통제를 받았습니다. 마치 감옥에 있는 것처럼요.
  • 그래서 우리가 그것은 안 된다. 그것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미국 장애인법에서 명시하는 장애인의 삶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그 책정된 예산을 다른 곳으로 사용해서 그것이 시설에서 지역사회 자립생활로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사실은 시설 같은 경우에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무명의 장애인들이 소송하고 또 이것이 비합법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고 DI 탈시설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 사람들이 시설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감옥과 같이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자유를 원했고 이제는 그를 바탕으로 탈시설 운동이 진행됐고 그것이 탈시설 프로그램을 낳은 것입니다.
  • 그래서 이제 자립생활센터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시설에 있던 사람들이 90여 명 정도였는데 그분들께서는 아직도 많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고 지역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분들이 있지만 원래 그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받고자 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산을 받을 수 있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주거를, 주거 환경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 가거나 또 필요한 생활 도구 같은 것들을 사는 것을 도와줍니다.
  • 그리고 이제 시설에서 나와서 장소를 옮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교통수단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 은행 계좌는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알려드리는데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실패하는 분들도 있고 다시 시설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계속해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죠.
  • 그래서 할 수 있게 될 때,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 그리고 두 번째가 어떤 것이었죠? 탈시설이 있고 그리고 전환기 프로그램이 있는데, 탈시설 프로그램이요.
  • 그러니까 전환기의 탈시설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떤 분이 그동안 자립생활을 해왔는데 생활비가 떨어졌다거나 200달러 정도가 부족한 경우 등이 있었는데 200달러가 부족해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요. 안 그러면 제가 길바닥에 나앉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분들이 이것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이 예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고요.
  • 그래서 그곳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도와주셨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탈시설 프로그램의 하나입니다.
  • 그리고 또 고용 혜택이 있습니다.
  •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싶거나 일을 시작하고 싶을 때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여러 가지 지원을 받죠.
  • 저비용의 주거생활, 그리고 메디컬 의료 혜택을 받고 교통 혜택을 받고 그리고 개인 돌봄, 활동 보조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죠. 그렇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 지금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데 이러한 모든 혜택들을 잃게 됩니다.
  •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들을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 그래서 장애인들이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일을 조금씩 하면서도 보조금, 혜택들을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 그것이 바로 고용 인센티브 프로그램입니다. 아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다 만들어져 있지는 않고 부족한데요. 제가 예를 들어서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자격 요건이 안 됩니다.
  • 생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주일에 750달러를 제 돈으로 써야 합니다. 제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요.
  • 왜냐하면 이분이 일을 하면 '아,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뭐였죠?
  • -동료상담이 미국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좀 간략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릴리베스 나바로: 동료상담의 미국에서의 목적은 어떻게 보면 모든 것들에서 굉장히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권익옹호가 그 안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권익옹호라는 것은 누군가를 옹호하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가 또 법을 바꿀 수도 있고 그런 활동들을 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1명, 2명, 3명 여러 명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할 때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일을 하려고 가져갑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렇게 일을 해야 하지?' 생각을 할 텐데 우리가 어떤 개인적인 내용보다도 개인적인 동료상담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동료상담의 의미도 있지만 개별 동료상담의 기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것, 그래서 집단 동료상담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같이 서로 돕고 저도 도움을 받고 다양한 것들을 해 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동료 대 동료로서 우리가 서로서로 손을 잡고, 바로 그것이 어떻게 보면 좋은 권리옹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함께하게 된다면 하나의 어떤 단단한 그룹을 만들게 되면 정부도 만날 수가 있고 시장도 만날 수 있고 시장에게 강력하게 요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 보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있고. 그래서 개인보다는 함께 힘을 합쳤을 때 집단 동료상담를 통해서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또 좋은 의지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질문하는 것, 이런 것들이 좋게 작용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정부에 대해서 활동지원 등을 요청하는 그 원칙이 바로 동료상담입니다.
  • -정리를 좀 하면 미국에서는 탈시설 운동이 있었고 그리고 탈시설을 원하시는 장애인들을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서 탈시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 같고, 그러니까 가능하다는 거죠.
  •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씀을 하신 거고 그리고 동료상담의 목적에서는 결국 같이 한다, 권익옹호를 같이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하는 것에 대해서 권익옹호를 말씀하셨는데 인간관계의 재구축, 사회적인 내용과 많이 비슷한 내용 같아요. 표현이 다를 뿐이지만.
  • 미국은 탈시설 시설이 정착화가 돼 있습니까? 그거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정착돼 있나요, 탈시설이?
  • 누구나 다 탈시설 하려면 다 가능합니까?
  • -릴리베스 나바로: 네, 그렇습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암스테드 결정,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 제가 조금 더 동료상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동료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제가 정말로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여러분들을 굉장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 동료상담의 진정한 환경이 가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대선이 끝나셨는데, 여러분이 어떤 언론의 자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고 그리고 또 어떤 정부에 연결할 수 있는, 즉 자유가 있는 한해서 여러분이 이런 좋은, 그리고 단단한 동료상담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자유를 먼저 찾는 싸움을 멈추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통제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자유롭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여러분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게 된다면 그 순간에는 동료상담을 잊어도 괜찮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동료상담은 힘듭니다. 동료상담은 하나의 힘이죠.
  • 그런데 자유로운 사회,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동료상담은 그 환경, 자유로운 환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그러면 다음 질문 넘어가겠습니다. 간단간단하게 하겠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현재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의 하나일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다 100% 보장이 되고 있습니까?
  •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시위를 하는데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욕을 먹고 있습니다.
  • 지하철 투쟁하면서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욕을 먹고 있고 심지어는 정치인들에게도 비난을 받고 있는데 미국은 그런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있는데 미국은 그러한 역사를 통해서 이동권을 지금 보장받고 있습니까?
  • -릴리베스 나바로: 저희의 운동은 운동권, 지금 이동권에 대한 싸움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시작이 됐었습니다. 과거에 흑인 인권운동부터 시작이 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아시겠지만 그분은 흑인이셨고 노예의 자유화를 위해서 싸웠던 분이셨고요. 그런 일 때문에 돌아가셨던 분이셨죠.
  • 그래서 또 다른 분, 로스파트라는 분이 계셨는데 버스를 탈 때, 법에서 그렇게 돼 있었어요. '흑인들은 무조건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분은 "아니요? 내가 앉고 싶은 데 앉겠다"라고 했었는데 버스 운전자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분은 그냥 원하는 자리에 앉으셨는데 체포를 당하셨는데.
  • 미국에서 로스파트라는 분이 버스에 올라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싶은 것.
  •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보면 과거에 장애인들은 버스 자체에 탈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과거에 어떤 목사님이 계셨는데 목사님이 요양원에 근무하셨었는데 그때 굉장히 많은 지역에 분이 계셨지만 그냥 저녁 때 불을 끄라고 시켰던 거예요.
  • 그런데 "자고 싶지 않다, 술도 먹고 싶다" 그러셨어요. 그렇지만 강제로 불을 끄고 그런 내용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때 당시에 그랬던 것을 보면 "아, 이것은 굉장히 좋은 이슈가 될 수 있겠구나" 요양원에 계신 분들이 밖에서 사실 수 있게 하는, 이럼으로써 함께 시위하자고 했었고 계속 시위하자고 했었어요.
  • 그러한 어떤 과정 속에서 82년에 제가 미국에 왔을 때 제가 그분들을 만났었고 그때 우리가 8년 동안 싸움을 해서 90년에 ADA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42번 체포가 됐습니다. 우리는 함께 집회를 나갔어요. 집회를 하고 쫓겨나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 바로 이것이 어떤, 이렇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희는 또 굉장히 좋은 변호사가 있었기 때문에 활동을 자신할 수 있었거든요.
  • 그래서 또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의 대의명분이 있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림이 있어야 하고요. 이런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함께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변호사에 대한 지원도 받으면 좋겠죠. 또 좋은 지원들, 다른 운동 진영의 연대 단체들이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 함께 움직이면서 또 여러분 스스로의 스타일도 가져가야 할 것입니다.
  • 제가 한국에서의 이러한 정치라든지 상황은 잘 모르지만 아마 이런 반영으로 봐야 할 거예요. 한국에서의 장애인 운동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분명히 잘 될 겁니다. 승리하실 겁니다.
  • -다 잘 설명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동료상담가에 대한 자격 기준에 대해서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장애인 동료상담가의 기준이 있습니까? 뭔가 자격증을 따거나 공부를 받아야만 자격 기준을 받게 되는 겁니까? 아까 언급해 주신 것 같았는데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 -릴리베스 나바로: 자립생활운동에서 장애인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또 똑똑하신 분이고 장애계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고 계시고 서비스 네트워크에 대해서 이해하고 계시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대응하는 효과적인 지도자라면 여러분들은 동료상담가 될 수 있습니다.
  • 혹은 커뮤니티, 사회적인 학위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학위는 실제로 일을 하는 데 전혀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지금 미국에서는 제가 보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장애인들을 알아주고, 미국에서는 동료상담가들이 정신건강을 도와주는 거죠. 여기에는 많은 상담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울증이나 여러 가지 이슈들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 여러 가지 도전과제들의 내용인데요.
  • 물론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어떤 카운슬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아야 되기도 합니다.
  • 그래서 프로페셔널한 카운슬러가 되기 위한 학위는 있죠. 하지만 자립생활 스탠스에서 보게 되면 이런 카운슬러를 받고자 하신다면 이런 것들을, 명상이 필요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다른 방법이 필요할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조금 더 전문적인 카운슬러가 필요할 텐데 우리는 그런 전문적인 카운슬러를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 자립생활센터에서는 동료 대 동료로서 카운슬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에게 동료로서 우리가 더 연맹으로서 동료로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어떻게, 명확한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지만요. 우리가 조금 더 서로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러한 카운슬링을 이 자립생활센터에서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조금 더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려고 하고 직접적인 카운슬링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요.
  • -전문 영역에서의 상담도 필요하고 그것에 대한 상담도 있지만 동료상담가의 기준이 필요하냐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미국에서는 동료상담가가 제도화가 돼 있지 않고 자격증이 없나요? 장애인 동료상담가 자격증이 있나요, 미국은?
  • -릴리베스 나바로: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우리는 최소 5년 정도 경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애계에서 최소 5년 정도의 경험을 요구하고 있고요.
  •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최소한의 경험을 요구하고 있고요. 그것이 동료상담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 정신 건강이나 실질적인 정말 제대로 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들은 전문 카운슬러에게 연결을 해 드립니다.
  • 왜냐하면 우리가 전문 카운슬러인 것처럼 그런 척을 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정말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장애인으로서 산 경험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뭔가 더 필요한 경우가 있을 거고요. 그러면 우리는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거고 그것이 바로 그분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 그것이 정말 제대로 된 도움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알겠습니다. 특별한 자격증 제도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요.
  • 준비된 질문 중 이것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요. 미국에서는 장애인 코로나 확진에 대해서 어떤 대책 매뉴얼이 있습니까?
  • 만약에 장애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미국 의료계가 어떠한 식으로 치료를 해 준다에 대한 매뉴얼이 있습니까?
  • -릴리베스 나바로: 저희도 코로나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 첫 번째로 이런 것이 발생했을 때 깜깜했습니다. 저희가 뭘 할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 안에서 우리의 어떤 도시 정부, 주 정부, 시 정부에 대해서 질병관리 통제여부를 좀 지켜봤습니다.
  • 그리고 이런 쪽에서도 우리 같은 경우에 보게 되면 모든 것이 새로웠던 상황이었습니다.
  • 그래서 이런 정부 기관 기구에서는 여러 가지 공고를 냈었고 먼저 백신을 맞는 자격을 줬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 그리고 노령 장애인이라든지 혹은 당뇨라든지 이런 기저질환이 있는 장애인들은 퍼스트로 먼저 백신을 또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 그래서 시장님과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 그런 쪽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었고 그래서 백신이 맨 처음에 나왔을 때, 그리고 저희도 맨 처음에 백신이 굉장히 두려웠어요.
  •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또 아직까지 백신을 맞지 않은, 왜냐하면 백신 자체가 시험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접종하는, 사람에게 접종하는 것이 어려웠었거든요. 지금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 그래서 당시에는 긴급 상황 하에서 이런 백신이 공급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몇몇의 좋은 의사분들 같은 경우에 보게 되면 과거에는 말라리아나 독감 이런 것이 있었는데 이런 것과 관련해서 첫 번째로는 저희가 다른 약물들을 공급했습니다.
  • 굉장히 효과적이었죠. 그래서 이렇게 맹신하지 말고 백신을 너무 빨리 맞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지금 보게 되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들이 그리고 굉장히 많이 질환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 그래서 CDC 질병통제관리국에서는 분위기를 바꿔나갈까 하는 것이 마스크를 한다든지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고 마스크를 쓰는 건 좋다.
  • 나중에 K-94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봤을 때 최고의 내용을 장애인 사회에 작용하게 노력을 했었는데 하지만 처음 단계에서는 저희가 CDC를 따라 할 수밖에 없었어요.
  • 물론 굉장히 많은 공포가 있었죠. 많은 사람이 특히나 장애인들이 그 상황을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 왜냐하면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두려워했었거든요.
  • 코로나에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단계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그런 사례가 있었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괜찮아졌고 2년 정도가 흐르지 않았습니까?
  • 지금은 바이러스가 변이, 변형되고 있고 그래서 보게 되면 치사율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가 과거에 마스크를 썼고 글라스를 썼고 이런 글러브를 착용하게 했었고.
  • 그다음에 체온을 체크해 가면서 그런 과정을 하다 보니까 저희의 센터에 오시는 분들의 숫자가 줄어들었어요.
  • 어느 경우에는 7명까지 줄어든 경우도 있었어요. 어느 경우에는 센터 자체를 폐쇄했던 그런 시기도 있었어요.
  •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 LA 같은 경우에는 아직까지 마스크를 쓰는 것은 버스라든지 이런 대중교통에서는 아직까지 써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고요.
  • 하지만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고 있는 상황에 불편하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고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 불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 상황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오랫동안 경제가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고 지금 다시 경제가 회복되는 그런 시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소상공인들이 가장 힘들었던 거였기도 하고요. 그리고 학생들도 폐쇄가 되면서 굉장히 많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었고 그러다 보니까 학생들이 자살하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 코로나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온라인 유튜브상에서 올라온 질문이랑 지금 여기 안 보이시겠지만 현장에서 100분 정도 참여하고 계신데 질문을 몇 개 추려서 할게요.
  • 몇 가지 불확실한 내용이 있어서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이거는 제가 몰랐던 건데 아까 질문이 하나가 언급했다고 했는데 제가 못 들어서.
  • 장애인 접근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런 욕구들에 대해서 미국 장애인 이동 계획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질문을 주셨어요.
  • 어렵다고 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 질문이 있고요.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대부분 나왔던 내용인데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미국에 발달장애인분들 누가 하고 있습니까? 발달장애인 분들이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장애인들이 하고 있습니까? 한국은 부모님이 하고 계시는데 미국에서는 발달장애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 질문은 이상입니다.
  • -릴리베스 나바로: 일단 첫 번째 질문이죠.
  • 제가 LDL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법이 아직까지는 항공기 내부까지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죠. 현재 이 법은 항공기, 즉 공항 들어가는 문 앞까지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항공기 안에서 도어가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 LDA는 항공기 안까지. 항공기법이라는 게 있어요. 항공기법에 대해서 지금 규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 항공기법은 항공기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관장하고 관리하고 확인하는 건데 제가 한번 체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잠시만요.
  • 항공기법. 저희가 LDA법이라고 부르는 항공기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 이거는 항공기 내에서 관장하는 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 항공기법.
  • 이것이들에 대한 조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공기 안에서는 예를 들면 저희가 이동하는 좁은 체어가 있잖아요, 의자.
  • 그런 휠체어가 있는데.
  • 굉장히 폭이 좁은 그런 휠체어가 있습니다.
  • 그래서 휠체어에 여러분을 앉히고 휠체어에서 이런 항공기 의자에 앉혀서 안으로 쭉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 기내용 의자에서 들어서 다시 좌석에 앉히는 거죠.
  • 이런 식으로 해서 기내용 체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내용 체어도 항공기 안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사용할 수 있고요.
  • 그리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도 승무원들이 도움을 주고 있고요.
  • 바로 이런 것들이 승무원이 있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항공기법 관련해서 적용하는 내용이 이런 게 있습니다. 하지만 LDA는 명확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요.
  • 예를 들면 화장실의 문 같은 경우, 27인치 28인치 정도 돼서 안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싶은데 안 되고 있어요. 안 되고 있고 기내용 휠체어 같은 경우에는 여러분은 그 의자에 앉아서 화장실까지는 갈 수는 있거든요?
  • 항공기법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LDA법에서 이야기하는 기준을 맞추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까지 이해하셨습니까? 그리고 또한 항공기법에서는요.
  • 여러분이 어떤 휠체어가 너무 크다고 휠체어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내용도 있어요. 그래서 뭐냐 하면 여러분의 휠체어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기내용 휠체어에 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 그래서 여러분이 원래 탔던 휠체어를 화물칸에 싣고 이런 기내용 휠체어에 태운다는 것이죠.
  • 그래서 이런 어떤 법을 바꾸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항공기 안에서도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그렇게 되면 항공기, 또는 항공기 구조를 바꿔야겠죠. 더 크게 만들어야겠죠.
  • 그래서 항공기 안에서도 여러분이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그런 법을 하고 있는 겁니다.
  •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그런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발달장애인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러면 누가 과연 이들의 동료상담가가 되는 것인가.
  • 아마도 부모부터 시작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부모가 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욕구를 가장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그래서 함께 앉아서 자립생활센터에 함께 모여서 발달장애인의 요구사항을 체크하죠. 하지만 이런 동료상담을 하면서 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이고요.
  • 그리고 함께 교육을 받고 함께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이런 IL센터처럼 만약에 정신장애인이 그런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이런 전문적인 개입이 정신장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론이거든요.
  • 사람들이 교육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훈련을 받아야 하고 그런 장애 영역이라든지 아니면 동료상담에서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고 교육도 받아야 할 것이고.
  • 그래서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장애인들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는데 지금 발달장애인을 보면 그런 거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 -저희 오늘 컨퍼런스 주제와 연관해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릴게요.
  • 저희 오늘 컨퍼런스 주제가 자립생활 동료상담이잖아요. 미국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자립생활 미국의 센터장님께 질문을 하겠습니다.
  • 자립생활은 운동입니까? 서비스입니까?
  • -릴리베스 나바로: 이건 둘 다 해당합니다. 자립생활 운동이기도 했었고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 이것은 자립생활 운동 혹은 자립생활 권리 운동이라고도 합니다. 자립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모두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노인도 자립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 자립생활이라는 말은 굉장히 좋은 말이죠, 여러분에게. 또 자립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 말만 들어보고요. 이 단어를 사용해 봤지만 다른 것도 많습니다.
  • 하지만 자립생활 공동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립생활의 의미를 존중하고 인정받도록 그리고 그런 기회를 제공받도록 자립생활에 대한 기회를 제공받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운동이었고요.
  • 중요한 것은 바로 장애운동이 가장 핵심이 된 것이죠.
  • 많은 분이 자립생활 운동이라고 말씀을 하셨죠. 우리는 그 의미를 처음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것들도 다른 의미로 다른 단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지만 모두 똑같죠. 우리가 원래는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는 것이죠. 자립하고 싶고 독립하고 싶다는 의미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자립생활은 목표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운동의 이름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립생활 운동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요.
  •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그런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께서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 여러분께서 자립생활을 하더라도 하지 않더라도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 그런 것을 가지고 투쟁을 하죠. 그렇지만 이것은 장애인의 권리로 알고 또 장애인의 권리라고 이해한다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죠.
  • 자립생활은 장애인의 권리니까요.
  • -훌륭한 답변이 된 것 같고요. 자립생활은 장애인에게 권리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권리로써 인정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 오늘 긴 시간 동안 약 2시간 동안 릴리베스 나바로 센터장님께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오늘 미국의 자립생활 목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 다소 어렵고 난해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미국 사회에서의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이 자립생활 서비스 등 자립생활의 모습이 우리 한국 사회에 비해 어떻게 수렴되어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우리의 전망을 세우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제목을 미국의 자립생활을 물어보는 자리라고 생각하고요.
  • 어쨌든 어려운 자리 새벽인데. 저희는 낮이지만 미국은 지금 새벽입니다.
  • 새벽까지 나바로 센터장님께 큰 박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박수)
  • 미국에 계신 동지들, 가지 마시고 잠깐 준비를 한 중간에 축하 공연이 있을 거고요. 그때 진행한 가운데 내빈께 오셨다고 합니다.
  • 그래서 우리 내빈 소개하고 중간에 축하 공연 보고 그리고 영상 보고 바로 토론회 정말 운동인지 우리 현재 시점에서 우리의 의제를 가지고 운동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유튜브 보고 계신 분들 가지 마시고요. 계속 남아서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들리시죠? 끝났는데 소개 드리지 못한 분이 계셔서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협의회 회장님이자 경상남도 송정욱 관장님 모셨습니다.
  • (박수)
  • 경상남도 우호기관 송정욱 관장님 모시고 인사 말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송정욱입니다. 반가운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그러네요.
  • 저는 경상남도 장애인 권익 옹호 기관에서 학습 자리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거창하게 설명을 해 주셨지만 1세대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방금 미국에 계신 소장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1세대가 있고 2세대가 있고 점점 나아가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 자립생활센터의 한 흐름이기도 하죠.
  • 그래서 갑자기 인사말을 하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을 했는데요. 우선 15주년입니다.
  •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이제 2세대를 넘어 3세대를 향해 달려가지 않나 하는 생각을 조금 합니다. 그런 세월이 지나는 동안 경남에서도 장애인이 적어도 지역 사회 나와서 살 수 있는 기초는 만들었다고 생각을 해요. 많은 분이 역할에 비해서.
  •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장애유형에 따라서, 또는 그 장애 상황에 따라서 일상을 사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장애인분들이 아직도 많죠. 그래서 갈 길이 먼데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
  • 여러분, 여전히 배고프시죠?
  • 잘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서 말씀을 드리면 자립생활센터는 이제 국내법을 근거한 차별 금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장애인권리옹호기관 같은 CRPD가 있죠. 여기는 시대 변화에 따라서 평등을 적극적으로 만연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앞장서야 하지 않나 당사자 조직이.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이거입니다.
  • 우리 IL센터의 중요한 사업이기도 한데요. 또 다른 개량된 시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왜냐하면 개인 명의를 할 수 없는 집이고 개인 관리를 할 수 없는 집이고 그리고 완전히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 집이라는 평가가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또 다른 시설이기 때문에 탈시설 안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벗어나야 하는 곳이 바로 자립공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죠. 이거에 안주해서 안 되잖아요. 1세대는 이걸 만들었지만 이제 이게 필요 없다고 이야기를 하면 2세대는 그러면 또 다른 탈시설를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람이라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장애인 운동을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현재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적극적인 사회 변화를 시도하는 장애인 운동의 한 축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그래서 그 중심에 경남 지역 장애인 여러분이 계시고 또 장애인과 함께하시는 우리 비장애인 활동가 여러분이 움직여주시기를 바랍니다.
  • 오늘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박수)
  • -경상남도 장애인 권익 옹호 기관 송정욱 관장님 인사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김해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댄스 공연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박수)
  • -안녕하십니까?
  • (박수)
  • 저희는 김해서구장애인주관센터입니다. 저희가 준비해 온, 춤을 배워왔습니다.
  • 잘 봐주십시오.
  • (박수)
  • (축하 공연)
  • (박수)
  • -(함께) 감사합니다.
  • (박수)
  • -축하 공연 잘 봤습니다. 다음은 저희가 1부에서 15주년 활동 영상을 봤는데요. 조금 아쉬움이 남아서 섞어서 15주년 축하 영상을, 활동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상)
  • -박상호: 그래서 자립생활 운동도, 투쟁도 쉽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 먼저 기본권부터 다지자고 생각했습니다.
  • 이동권 교육과 활동 보조권, 탈시설까지 네 가지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 중간중간에도 과열찬 투쟁이 있었고요.
  • 제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이 내용은 자료집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수도권과 그 외 지역의 자립생활 운동이 조금씩 어려웠고요.
  • 더군다나 경남 지역 안에서도 크게 보면 군단위 지역을 제외하고 8개 시가 있습니다.
  • 그중 8개 시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지역은 창원시, 김해시, 양산시, 진주시 이 정도였습니다.
  • 그 외 지역은 지금도 활동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 저는 앞으로 우리 과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까 이야기했던 수도권과의 격차가 제가 생각하기로는 5년에서 10년 정도 차이가 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경남 지역은 어떻게 할 거냐.
  • 10개의 군 지역이 있습니다.
  • 10개의 군 지역에도 자립생활센터가 있는 곳이 있지만 활성화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에서는 앞으로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아직 저희가 원하는 것은 행복할 권리, 배울 권리, 소득 보장이 되는 권리.
  • 이런 권리들을 앞당기기 위해서 제 스스로 앞으로 많이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시골 지역에는 아이가 계신 당사자분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 이분들께서도 작지만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경남협의회 식구들이 더 열심히 싸워야 하지 않을까.
  • 그래야 우리가 지역 사회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지 않을까.
  • 모든 장애인분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망입니다.
  • 이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경남협의회가 주축이 되어서 지구센터들과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6개월에서 7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 소장님들, 국장님들, 또 센터 많은 활동가분들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 경남협의회 대표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상입니다.
  • (박수)
  • -박현: 잘 말씀해 주셨고요. 그래도 경남협의회가 성과를 냈던 게 맞습니다. 대한민국 장애인 콜택시, 물론 국가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경남도에서 경계를 넘어서 장애인 콜택시가 운행이 됐던 게 대한민국 최초입니다.
  • 대한민국 최초로 운행이 됐고 그것이 타 지역에게 모범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겁니다.
  • 물론 이후에는 장애인 특기를 못 가진 기업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상버스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군 단위 저방버스 도입은 어디든 잘 도입이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것은 중요한 문제로 짊어지고 가야 할 이야기인 것 같고요. 그런 성과도 있었습니다.
  • 이후에 더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야 할 것 같고요. 다음으로 이어서 이형숙 회장님께서 해 주실 건데 이형숙 회장님이 PPT를 준비하셨을 거예요. 그렇죠?
  • PPT를 쓰면 저희가 다 나와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 이형숙 회장님이 자료를 순서대로 탈시설, 이것도 굉장히 저희한테 중요한 문제입니다.
  • 일본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마찬가지고 자립생활 운동 역사에 과정이 있었어요. 우리도 그 과정을 밟고 있고요.
  • 성공이냐, 아니면 실패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탈시설을 주장하는 단체는 저희밖에 없습니다. 어느 단체도 주장하지 않고 있고요. 저희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탈시설의 역사를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형숙 회장님 발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형숙: 제가 이번 사건에는 우리 대한민국 탈시설 운동의 역사와 현황을 정리해 봤습니다. 다음으로 넘길게요.
  • 먼저 탈시설 운동을 전개 5기로 나눠 봤습니다. 첫 번째는 개별적인 인권 침해 대응에서 연대로가 있고요. 두 번째로는 시설 존재 자체에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했었던 그런 시기가 있었고 그리고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 강화와 시설비리 척결 운동.
  • 세 번째는 지역 사회 자립생활 기반과 마련 투쟁, 네 번째는 중앙정부 정책 및 예산 확보, 다섯 번째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행, 장애인탈시설지원법으로 5개로 제가 간단하게 발표를 하겠습니다.
  • 첫 번째는 저희가 처음 70년대에는 시설인권운동 이전 시대가 있었습니다.
  • 이때는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형제복지원, 양지마을 이런 것들이 각종 언론을 통해서 학대 사건이 폭로되고 시설수를 알리던 시설이 있었습니다.
  • 이때는 목숨을 걸고 개개인이 탈출했지만 이것은 개별사건의 폐쇄로 끝나고 운영자는 다시 시설을 운영하는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 1996년도로 가보면 이때 처음으로 에바다 사건이라는 투쟁이 있었습니다. 복지와 정상화 투쟁인데 이때 시설 정상화 요구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던 그런 시기입니다.
  • 이때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회 통합, 자립생활 이념의 대조, 한국장애인운동조직의 성장과 현장 추진이 시작되는 그런 해로 볼 수 있었습니다.
  • 그리고 2002년도부터 우리나라의 자립생활 운동이 싹을 트기 시작한 때죠. 이때 드디어 이런 것을 사회에 알리고 시설 사회에 대한 것을 저희가 사회에 알리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 이때 저희가 96년도에 에바다 투쟁을 시작해서 계속해서 시설 비리 투쟁이 시작됐고 사회복지시설과 법에 대해서 저희가 계속 요구가 시작되는 해입니다.
  • 그래서 정부는 2005년도에 처음으로 시설 조사를 하게 됐습니다. 2005년도에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설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때가 우리나라의 최초 대대적인 시설 전수 조사가 실시되었습니다.
  • 이때 복지시설 중심으로 전국에 22개 시설을 조사했고요. 그리고 미신고 복지시설 같은 경우에는 적게는 253개 시설 조사를 했습니다.
  • 이때 조사할 때 중요한 게 뭐였냐면 시설 거주자에게 먹고 싶을 때 식사할 수 있습니까?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 모양을 할 수 있습니까?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습니까? 외출이 자유롭습니까?
  •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 그때 답변이 뭐였냐면요. 단체 생활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돈이 없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할지 모르겠다.
  • 2005년도에 처음 시설 조사를 했을 때 질문과 답변이었습니다.
  • 시설이 인권 침해의 온상이었음에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목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 카르텔이라는 것은 침묵으로 문제가 은폐되는 아무도 이것을 사회 문제로 두각하지 않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조용히 하고 있었고 이것은 정부, 시설 운영자, 장애인의 가족, 국민 등 4자간의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사회에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 정부는 어떻게 했냐, 거액의 예산을 들이거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고서도 장애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외면했다.
  • 국민은 어떻게 했냐, 국민은 손쉽게 별다른 부담도 없이 장애인들을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 시설 운영자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해 왔다는 동정론에 기대며 보호와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장애인의 사회적 격리를 당연시 하고 이들의 삶의 존엄에 대해서 침묵했다.
  • 장애인의 가족은 국가의 지원이나 보조가 없는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부양 부담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4자간의 침묵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때 당시 드러났습니다.
  • 2006년도에 탈시설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 그래서 이때는 인권 침해와 비리의 모습을 병든 사회의 모습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의 사유화와 족벌 운영회의 견인, 관리 감독의 강화를 통한 투명성 확보와 공익 이사제 도입을 위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투쟁을 했습니다.
  • 2006년도에 했었습니다.
  • 이때 반대했던 집단이 있었습니다.
  • 보수 정부 여당인 한나라당과 사회복지법인들이 매우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때 당시 탈시설 정책은 없었지만 탈시설공동투쟁단의 탄생이 되었고 이때부터 탈시설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008년부터는 탈시설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시기입니다. 이때 드디어 우리가 시설 밖으로 나오자, 지역 사회로 나오자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 이때 당시 2009년도에 마로니에 8인이라는 것이 유명한 사례인데 이것은 8명의 거주 장애인들이 마로니에로 나와서 지역 사회에서 투쟁이 이것이 탈시설 투쟁의 시작이었고 이것이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 이때 운동을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탈시설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 그 외에 2005년도에 시설 조사를 했고요. 2012년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전국적으로 탈시설 조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때 자립 욕구와 저해 요인을 파악하면서 57.5%가 자립 희망하는 조사가 기록됐습니다.
  • 이때 거주인들이 가장 탈시설로 가장 욕구를 뽑았던 것은 집, 활동지원, 소득 세 가지를 뽑았습니다.
  • 그리고 또 영화 도가니 여러분 보셨나요?
  • 이때 2022년에 영화 도가니의 국민적인 열풍으로 2007년에 개정하지 못했던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되었습니다.
  • 빨리 이야기해야겠네요. 그러면 2014년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탈시설 국가 계획 수립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당시 서울시는 2017년도에 서울시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해서 저희가 사실상 정책 수립이 되었고 이때 당시 중앙정부는 정책이 전혀 없었을 때입니다.
  • 저희가 또 탈시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대 적폐 폐지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기준, 장애인시설을 말합니다.
  • 이것들은 탈시설 운동과 지역 사회 지원 체계 마련을 하기에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가 이 운동을 통해서 있었습니다.
  • 2017년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드디어 탈시설 정책을 국정 과제 42번으로 채택이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냐면 장애인 지역 사회 탈시설 설치, 자립 지원금 지원, 탈시설 장애인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폐지를 시작으로 환경 조성에서 장애인들은 누구나 안전하고 사회 환경 정책 서비스.
  • 아까 우리 미국에서 발표했던 대표님이 환경을 바꾸는 이런 것들이 문재인 정부 국정 42번에 사실상 정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과제로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에는 우리 20년, 21년도부터 22년 지금도 코로나 시대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코로나 시대에도 시설이 아닌 탈시설으로 명확하게 우리가 알고 있었습니다.
  • 2020년 12월 10일 드디어 68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됐습니다. 그래서 이 법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의 핵심은 어떤 것이냐, 모든 장애인이 독립된 기체로서 지역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생활 권리를 명시했습니다.
  • 계속해서 우리가 말씀하는 것처럼 자립생활을 권리로써 명시하는 것이 탈시설 지원법의 중요한 명제고요. 두 번째는 장애인이 탈시설 자치를 보장하는 국가와 지자체 승인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 세 번째는 탈시설을 지원하는 기반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이 탈시설 지원법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네 번째는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정착 지원, 주거 유지 서비스, 시설의 단계적 축소 및 폐쇄 지원, 인권 침해 시설에 대한 조치 등을 명시했습니다.
  • 장애를 이유로 집단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중증 장애인 보존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국정 과제 42번으로 발표했는데 실질적으로 2020년도에도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 조사가 실시됐습니다. 이것은 중앙정부 최초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 조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 장애인거주시설 612개, 시설 장애인 2만 4214명에 대해서 조사를 했고요. 이 중 중증 장애인 98.3%, 발달 장애인 80.1%, 평균 입소 기간이 거의 20년 가까이 됐고요. 이 중 무연고자가 28%고 기초생활수급권자도 84%에 가까웠습니다.
  • 이 중 전체 조사에 응한 분들 중 탈시설을 희망하는 분은 33%가 되었습니다.
  • 2021년도에 드디어 문재인 정부 말기죠. 8월 2일에 복지부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 탈시설공동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과입니다.
  • 아까 제가 2006년도에 장애인 탈시설 집단 농성까지 했습니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로 탈시설을 반대하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 거주시설 반대, 그리고 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등 이 사람들이 청와대에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냈고요. 국무총리 면담도 있었고 집회도 있었습니다.
  • 이들은 탈시설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자만 탈시설을 추진해라 그리고 좋은 시설을 만들라는 것이 탈시설 반대하는 집단이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투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장애인권리보장법 및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농성도 국회 앞에서 500일째 가까이 하고 있고요.
  • 명동성당 앞 탈시설수요미사도 하고 있고 국회 보건복지부위원회 의원 방문 및 지역구 방문하고 있고 총리 면담과 복지부 장관 면담 요구도 했고 탈시설 시네마, 언론 릴레이 기고,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전국 집회도 하고 있고 탈시설 장애인 및 가족 증언대회도 있고 탈시설장애인당 활동도 있고 대통령후보 따라잡기도 있고.
  • 제가 지금 머리를 삭발하니까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 중앙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곧 5월 10일부터 시작하는데 윤석열 정부에게 지금 탈시설 지원법 개정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 우리가 아까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권리로써 보장받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 이동과 교육과 노동과 지역과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서울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지역 사회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 너희가 살 곳이 어디 있냐 지금 현재 거주 장애인이 10만 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지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우리가 모두가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존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 그래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을 시설 보호의 종식과 지역 사회 기반이 주거 서비스를 결별해야 한다.
  • 그러면 마지막으로 탈시설이 남긴 성과를 보겠습니다.
  • 수용해서 존엄이고 분리해서 악이며 집단 서비스라는 대단한 서비스.
  • 시설 사업 입법이 아닌 장애인 권한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 이제는 더 이상 수용 시대는 종식되어야 한다.
  • 이제 우리나라가 살기 어려운. 70년대, 80년대는 그때 우리나라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 소득 1000만 불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2022년도에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이 반드시 제정되기 위해서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
  • -박현: 여러분이 잘 와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야기 같고 장애인들의 이야기 같아서 피부에 와닿지 않는데 이번에 제가 탈시설 과제인 장애인 연대를 만들면서 많은 활동가들, 장애인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 시설 경험이 있냐, 한 적이라도 있냐고 물어보면 상당수가 시설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 저도 있고요. 저도 있어요. 저도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장애인들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시설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런데 상당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상당수가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시설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노인정 체계 요양 시설 확충입니다.
  • 즉, 요양원에 부모님들 그리고 나중에 나이 먹어서 능력이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해서 경제권이 없어서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 요양시설에 갑니다.
  • 요양시설은 어떠냐. 정말 따닥따닥 붙어서 여러 명 붙어서 관리사가 관리해 주는 것. 요양사가 관리해 주는 것 그런 서비스를 받습니다.
  • 이번에 일대일 요양사가 없죠. 그리고 똑같아요. 9시에 자서 10시에 일어나고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똑같은 사람한테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 그게 여러분 부모님의 모습일 수 있고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 이것은 국가 정책이에요. 국가 정책이 국가위에서 이사회에서 기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정책 자체가 시설입니다.
  • 중요한 것은 기여입니다. 국가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들.
  • 그것이 바로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나중에 나이를 먹고.
  • 우리가 노인 시설로, 장애인 시설이 아니라 노인 시설로 가는 거예요.
  • 이런 문제를 국가의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바로 우리가 탈시설을 외치는 겁니다.
  • 이것이 바로 장애인 탈시설 이 문제가 단순히 특정한 장애인의 집단,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정책을 갖다가 바꾸는 싸움이라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 동료상담입니다.
  • 동료상담 대한민국이 아직 들어가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뜨거운 감자 중 하나입니다.
  • 그리고 이렇게 동료상담, 또 지정별 동료상담.
  • 정신장애인 동료상담, 발달장애인 동료상담 등등의 동료상담 뜨거운 감자입니다.
  • 우리도 이 동료상담을 잘해야 하는 과제고요. 동료상담위원회 위원장 김준우님께서 동료상담에 대해서 발표하시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우: 오늘이 경남협의회 15주년인가요?
  • 15주년?
  • 15주년인데 축하드립니다. 아까 앞에서 우리 박상호 님이 말씀하실 때 이 자리를 준비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다고 했는데요.
  • 오늘 하시는 말씀과 내용을 보니까 6개월 준비한 게 아니고 15년 정도 준비하신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에 15년 동안 경남협의회에서 열심히 해 오셨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있지 않나 싶고요.
  • 카페에서 우리 말씀 중에 수도권과의 격차라는 게 있었어요.
  •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수도권과의 격차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 저는 대한민국의 수도권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아닙니까?
  • 차이가 큽니다, 수도권과.
  • 보면 수도권에서 많은 활동가도 있었고 수많은 활동가, 수많은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 앞에서도 보니까 우리 탈시설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저도 자랑스럽게 탈시설 장애인이다 가볍게 웃으시는데요.
  • 비록 한 달이지만 한 달 있었던 사람이 30년 있었던 사람보다 아는 게 많을 수도 있더라고요. 탈시설에 대해서.
  • 탈시설에 대해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우리 보면 센터에 동료상담가들 많이 있잖아요.
  • 탈시설에서 동료상담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설에서 보면 나오기 전부터 시설에서부터 우리 센터의 경남협의회 센터에서 많은 상담가들이 시설에 가서 동료상담을 하고 조사하고 이렇게 하면서 시설에서 나와볼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까지 시설에 나와서 주택에서 살고 시설에서 나오는 과정까지 경남협의회.
  • 우리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들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동료상담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 미국에서 혹시 이야기를 했는데 이거를 가르치더라고요.
  • 오늘 제가 보통 아는 부분에서 동료상담가란 정의해 보면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모든 장애인은 동료상담가다라는 표현이 미국에서도 시작됐다고 해요.
  • 과연 우리 한국에서 동료상담, 한국에 IL센터의 모든 장애인들이 동료상담가인가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는데요. 미국에서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자립생활 동료상담가.
  •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료상담가 될 수 없다. 물론 장애인이라는 것이 동료상담을 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IL센터에서 활동하는 동료상담가는 보다 많은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 인간 관계 그리고 활동 지원 서비스 동료상담이나 그런 역할이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활동하고 투쟁하는 동료상담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IL센터에서 모든 서비스, 모든 활동, 모든 운동에서 동료상담가가 필요 없는 운동이 없다고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 그렇다면 동료상담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사람이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각자 역할이나 성향이나 능력이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능력과 성향이 맞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 한국에서도 동료상담, IL센터에서 활동하는 모든 장애인은 동료상담가다.
  • 지금 현재 거의 대부분 보면 동료상담, 예비 동료상담 이 정도만 동료상담가라고 부르고 있지 센터에서 활동하는 모든 장애인을 동료상담가라고 우리조차도 부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장 먼저 센터에 계신 소장님들.
  • 소장님들부터 동료상담가였으면 좋겠어요. 어떤 역할을 하시든.
  • 거기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요. 미국에서 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한 가지 깜짝 놀랐던 것이 어떤 내용이었냐면 미국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데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
  • 장애인이 결혼해요. 그리고 부모님이 당연히 왔거든요. 활동 시간이라든지 수급자, 그런 불이익이 있으면 들은 우리가 대응을 했는가 반성하는 시간이었는데요.
  •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시간 줄이고 어떻게 했죠?
  • 무슨상의 이유라고 그렇죠?
  • 실제로 경험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 현실이 문제입니다.
  • 그래서 이걸 장애인 차별로 하면 어떨까. 비장애인이 결혼하는데. 저는 한 번도 안 해 봐서 한 번 이상 해 보신 분?
  • 비장애인 결혼 두 번 하면 불이익이 두 배인가요? 그렇지 않잖아요. 장애인이 결혼하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요. 모든 분야의 사람이 따라오기 때문에.
  • 이것조차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장애인 차별임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했다라는 시각이 있기도 했고요.
  • 동료상담가의 자격.
  • 자격은 어떻게 볼 것인가. 자격은 보니까 우리가 지난해 작년에 위원회에서 한국과 일본 관련된 국제 강의를 했었어요.
  • 일본에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 물어봤어요.
  • 그 당시에는 일본에서도 자격증 시간이 있었대요.
  • 오늘 미국에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미국도 자격증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 반대해 왔는데 지금 현실에서는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럴 때 우리가 이제는 좀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지금까지 솔직히 좀 흔들렸잖아요, 그렇죠?
  • 누가 우리를 흔들었을까요?
  • 일본에도 작년에 물어보았고 오늘 미국에도 물어봤고 이제 어디에 물어볼까요?
  • 이제는 일본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에요.
  • 그러면 어디에 물어볼까요?
  • 어디에 물어봤으면 좋겠냐면 우리 자신에게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어요. 십수년 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 자격증에 어떤 문제가 있고 왜 하지 않아야 하는지.
  • 확신을 가져서 우리의 어젠다로 의심하지 말고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한 번 더 확실한 시간이었고요. 그런데 미국에 계신 분에게 자격을 질문했더니 우리가 생각하는 자격과 또 다른 자격을 이야기하더라고요.
  • 우리가 놓쳐버린. 우리는 보이는 자격을 이야기했었는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였냐면 장애인과 삶의 이야기에 진심 어린 관심.
  • 그게 바로 진정한 동료상담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요.
  • 또 그리고 보면 동료상담가가 많이 배출이 많이 안 되고 있는 현실이잖아요.
  • 지금 동료상담가 매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배출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 많은 수적, 양적 확대가 부족했는데 경남에 계신 분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고 경남이 출신 가장 많은 거 아시죠?
  • 지금 웬만한 소장님들 다 유세하셨을걸요, 그렇죠?
  • 경남에 계신 소장님들이 주도적인 역할, 리더의 역할 간곡히 부탁드리고 꼭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 왜냐하면 그분들이 벌써 10년 전부터 하셨던 분들이니까.
  • 이제는 동료상담에 대한 것을 부탁드리고 싶고요.
  • 그리고 제가 우리나라 동료상담가를 봤는데 취약하다고 느끼는 게 뭐냐 하면 개별 상담.
  • 우리나라가 하는 집단 상담에서는 정해져 있어요.
  • 결론이 정해져 있어요. 물론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두 자리의 상담이기 때문에.
  • 그런데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 개별 동료상담에서는 많은 취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개별 상담은 어떤 상황에서든 차이가 커요.
  • 또 집단 동료상담이라고 이야기하면 목적이 개별 상담에 있다고 생각하고 개별 동료상담에 대한 뭔가 기조들이 필요하겠다.
  • 이런 생각이 들고 그리고 또 동료상담에서 이슈화된 게 자유 인력.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던 부분인데요. 물론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개별화된 유형에 맞춘 동료상담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
  • 그리고 지금 한자협에서 하는 동료상담이든 뭐든 간에 이것도 뭐냐 하면 동료상담가들이 활동하는 데 있어서 자기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
  •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개벌적으로 자기개발을 한다든지 동료상담을 받는다든지 이랬는데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니까 지금 보고 느끼고 그냥 한시더 큰 쳬적인 자기개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적인
  • 그리고 또 현재 동료상담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의 고충이 뭐냐 하면 반대가 없다. 나는 동료상담을 매일 하고 있는데 나도 동료상담을 받고 싶다.
  • 동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없다는 것, 그런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 동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한자협에서 마찬가지로 경남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동료상담가가 비장애인도 있고 장애인도 있어요. 그래서 동료상담가가 어떤 존재일까.
  • 그다음에 어떤 의미일까, 그게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분은 보면 그냥 동료상담가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보다 더 들어주는 그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동료상담가가 센터 안에서 의미 있게 동료상담을 하고 동료상담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저는 생각하는 게 모든 센터의 회장님들이 동료상담가였으면 좋겠어요.
  • 정말 잘하고 있어요.
  • 경남협의회 동료상담가들이 우리가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동료상담이라는 파트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을 해 봤는데.
  • 자립생활과 동료상담가 간의 관계에서 표현하면 삶은 달걀을 갓 까는.
  • 그 말은 동료상담은 자립생활에 모른다고 생각해요.
  • 그리고 실제 자립생활센터 안에서는 정말 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고요.
  •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동료상담 이야기가 얼마큼 되고 있는가. 물론 장애인 동료상담가들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자립생활센터 내에서는 활동가들이 봤을 때는 비장애인이 훨씬 많아요.
  • 과반수 이상이에요.
  • 보통 평균이 장애인 활동가 3분의 1, 이 정도.
  • 정말 자립생활에서 동료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자립생활센터 내에서 모든 활동가가 동료상담에 대해서 이야기가 필요하죠.
  • 그러려면 비장애인 활동가들도 동료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궁금해하시고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죠.
  •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하든 센터 내에서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동료상담, 그런 게 필요하겠죠.
  • 그런데 우리 한자협 동료상담위원회가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지만 비장애인들에게 동료상담을 같이 참여할 수 없겠지만 동료상담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될 수 있는 그런 모션이 필요하겠다.
  • 이런 생각이 들고요. 끝으로 앞에서 미국에서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자립생활은.
  • 아까 마지막 질문이었죠? 자립생활은 권리인가요? 뭐였죠? 운동인가요? 뭐였죠?
  • 서비스인가요?
  • 운동이냐, 서비스냐.
  • 이분이 뭐라고 하셨죠?
  • 둘 다라고 하셨죠.
  • 그래서 마찬가지로 동료상담이 중요한가, 자립생활이 중요한가 이것도 둘 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보면 아까 자립생활이 운동인가요, 서비스인가요? 둘 다 중요하다.
  • 마지막에는 자립생활 동료상담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자립생활이 권리라면 동료상담도 권리다.
  • 우리가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정말 동료상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동료상담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 15주년 축하드립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 (박수)
  • -박현: 17분 걸렸죠? 세 분이서 15분. 기본적으로 20분이었는데.
  • 저도 많은 고민이 드는데요. 시간관계상 제 생각은 마무리 멘트로 하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질문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 질문이 뭐라고 올라왔냐면, 잠시만요.
  • 경남에는 거주시설에 동료상담을 하기 힘듭니다. 서울에는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동료상담을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질문이 올라왔는데 이거는 이형숙 대표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 저는 두 분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게 동료상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리고 또 동료상담가이시면서 서울 지역 대표로 계신 분께서 시설에 대한 동료상담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말씀을 해 주세요.
  • -박상호: 서울 지역은 현재 2016년도부터죠.
  • 2016년도부터 서울시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는 IL자립생활센터와 그리고 거주시와 일대일로 연계할 수 있는 거주 연계 사업이 있습니다.
  • 그러니까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1개의 거주 시설과 연계해서 그 시설에 들어가서 거주인들을 만나면서 탈시설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작년에 서울의 송파구에 한 시설이 있었어요.
  • 이것도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서울시 자립생활센터와 연계해서 거주 연계 사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안내했던 거주 장애인이 집단 감염이 되면서 연계 사업을 하고 있는 센터에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설 앞에 가서 집회도 하고 그리고 거기에 176명의 장애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니까 빨리 분리 조치를 하면서 그중에서 한 장애인이 또 탈시설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 그랬더니 올해 그 시설에서 센터와 같이 연계 사업을 하지 않겠다, 이 연계 사업을 하려면 어쨌든 업무 협약식을 가져야 하는데 이 협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처럼 현재는 시설에 동료상담을 하려면 그 시설에 잘 보여야 해요.
  • 어쨌든 시설을 방문해야 하니까.
  • 제일 첫 번째, 시설에 가서 동료상담을 하려면 그 시설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질문하신 분은 아마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 동료상담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첫 번째는 절대로 시설 안에서의 동료상담은 저는 반대합니다.
  • 어쨌든 시설 밖으로 나와서 시설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동료상담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하면 저는 답을 알고 있어요. 제일 먼저 그 사람과 관계를 가져야 해요.
  •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 서로 신뢰 관계가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동료상담을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 동료상담가들 제일 급한 마음은 동료상담을 하러 간다고 하니까 보자마자 처음 만난 사람과 동료상담...
  • 우리가 지금까지 동료상담가로서 우리가 해 왔던 것처럼 하면 되고 그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답변이 됐나요?
  • -박현: 짧게.
  • -김준우: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주시설 그런 게 있어요. IL센터에는 거주 시설 진입이 안 돼요.
  • 그리고 문제가 왜 IL센터 진입이 안 되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리고 서울시내에서 시설과의 관계예요.
  • 과연 우리가 원하는 탈시설이고 거주에서 원하는 것은 탈시설이 아니거든요.
  • 목적 자체가 달라요. 그러니까 관계를 맺기 쉽지 않은데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도 생각을 해요.
  • 지자체 의지가 있느냐, 지자체와의 싸움을 잘하는 것이 그것이 탈시설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 실질적으로 탈시설, 시설에 있는 거주인들과 동료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동료상담가나 자립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너 또 자립생활 안 하면서 무슨 소리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 시설에 계신 거주인분들은 자립하기 상당히 두려워요. 자립생활을 실제로 하고 있는 동료상담가들을 동료상담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 왜냐하면 시설에 계신 분들은 나보다 더 심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한다? 그러면 한마디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람들 동료상담 필요 없어요.
  • 그 사람들이 이야기해 줄 거예요.
  • 그분은 자신감을 가지죠. 나도 해 볼까? 이런 생각을 가지는데.
  • 저도 첫 해에 몇 번 만났을 때는 잘 말했거든요. 1년 후에 전화가 왔어요. 나도 자립하고 싶다고.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 바로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계속 그런 전화를 할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
  • 이상입니다.
  • -박현: 주최 측에서 빨리 끝내라는 사인을 주는데 질문이 들어왔어요.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제가 봤는데 간단하게 대답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준우 님께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 동료상담가 자격증이 없다, 그런데 센터에서 자격 조건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기준이 있다고 하던데요.
  • 5년의 자격 기준이 뭐냐, 이게 뭡니까? 하는 질문인 것 같고 또 하나는 동료상담 센터의 보조활동가가 동료상담가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료상담가의 역할은 다르다, 같다고 생각하는지 김준우 위원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 마지막으로 이거는 공격적인 질문인데 동료상담의 자격 아닙니까? 자격증이 없다 보니 이런 질문을.
  • -김준우: 4시 반에 토론 끝나는데 3분 남았는데요. 3분 안에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 자격이 아니냐. 자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과정이에요.
  • 과정이 끝난다고 해서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고.
  • 또 하나 질문이 뭐였죠?
  • -박현: 동료상담가 센터에서 장애인은 동료상담가여야 한다고 하는데 동료상담가인 것과 동료상담을 해야 하는 것은 다르지 않느냐.
  • -김준우: 동료상담가의 역할, 저는 같다고 생각해요. 동료상담가가 동료상담가의 역할을 하는 거고요. 동료상담가의 역할을 비장애인이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 동료상담가의 역할이 있고 그리고 비장애인의 역할이 있고 각각 역할이 있듯이 저는 동료상담가의 역할은 동일하게 생각해요.
  • 동료상담가와 우리 역할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 -박현: 부장도 동료상담을 해야 한다.
  • 여기까지 질문을 마치고 진짜 내가 질문을 안 하면 서운하다, 이런 분 있습니까?
  • 마지막 기회입니다.
  • 빨리 끝내주십시오.
  • -김준우: 여기서 질문하지 않으면 서운하다.
  • -박현: 질문 안 하면 서운하다.
  • -김준우: 빨리 한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 -박현: 질문을 일단 하실 분 없습니까? 진짜 안 하면 서운하다. 없으시면 마지막으로 패널들 한마디씩 듣고 마무리 발언하고 오늘 정말 긴 시간의 15주년 기념식과 한미 컨퍼런스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없으시면 먼저 아까 먼저 하신 박상호 님이 말씀을 많이 안 하시려고. 박상호 회장님께서 정리 발언 짧게, 소감 한마디 해 주십시오.
  • -박상호: 이 자리를 계기로 경남에서의 자립생활 운동이 더욱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센터는 잘되고 있는데 이것이 아니라.
  • 다른 지역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준우: 아까 이런 말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센터 소장이 동료상담가 여야 하는가 동료상담을 해야 하는가. 저는 했으면 좋겠습니다.
  • 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다 동료상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꼭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는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서 우리가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센터 소장이 동료상담가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자협에서 많이 보고 계신 소장님들 동료상담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박수)
  • -이형숙: 자립생활은 권리라고 했습니다. 이 권리는 우리나라의 헌법에도 있고 그다음에 국제법에도 있다고 계속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법에 명시된 것이 있는데도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죠? 우리가 목소리를 외쳐야 하는데 우리 여기에 모인, 현장에 모인 동지들과 유튜브 시청자 동지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만 지금 지역에 살고 있는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설에서 오랫동안 있는 장애인들도 밖으로 나와서 함께할 수 있기를 우리가 목소리를 외쳐야겠고.
  • 그 목소리가 다음이 아니라 다른 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함께 그 목소리를 내서 다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수)
  • -박현: 컨퍼런스를 작년에 열었는데 한미 컨퍼런스를 마지막으로 끝내는데요. 제가 일본과 미국에 가면서 깨달았던 게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동료상담위원회가 동료상담이 너무 쓸데없는 것에 몰려 있었던 것 같다.
  • 자격증 제도, 자격에 대한 것.
  • 우리가 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거기에 매몰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고 싶고요.
  • 그래서 저는 진보적 장애인, 진보적 동료상담운동이 시설에서 집에서 탈시설, 장애인들이 많이 생겨나야 하는 게 올바른 것 같습니다.
  • 탈시설 운동하고 지역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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